1. 평범한 아침에 울린 비극의 소식
1991년 7월 11일,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의 조용한 대학 캠퍼스에 충격적인 소식이 퍼졌다. 쓰쿠바대학교의 이슬람 문화 전문가이자 조교수였던 이가라시 히토시가 자신의 연구실 건물 근처에서 칼에 찔린 채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당시 그는 단지 학문에 몰두해 온 학자였고, 평소에도 온화하고 겸손한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다. 그가 일본어로 번역한 책이 바로 세계적인 논란을 일으킨 『악마의 시』였기 때문이다.
2. ‘악마의 시’, 문학과 종교가 충돌하다
살만 루슈디가 1988년에 발표한 소설 『악마의 시』는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무함마드를 풍자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책이 출간되자마자 전 세계 이슬람권에서는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고, 이란의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는 루슈디를 비롯해 책의 번역자와 출판자 모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파트와(fatwa)를 발령했다. 이슬람 율법에 의한 '사형 선고'는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다. 그 뒤로 실제로 여러 나라에서 루슈디와 관련된 인물들이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3. 이가라시 히토시, 그가 짊어진 무게
이가라시 히토시는 일본에서 이 책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했던 학자였다. 그는 단순히 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문화를 깊이 이해하고 있던 전문가로서, 책이 가진 문학적·철학적 가치를 진지하게 분석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가 번역한 『악마의 시』가 1990년에 출간되자마자 그의 이름은 위협의 대상이 되었고, 일부 이슬람 단체들로부터 경고와 항의를 받았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연구와 자유로운 지성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4. 계획된 살인, 그리고 사라진 단서
그의 죽음은 한 편의 범죄소설처럼 치밀했다. 1991년 여름날 아침,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했고, 곧이어 피투성이가 된 시신으로 발견됐다. 몸에는 다수의 칼자국이 있었으며, 사건 현장에는 지문, 족적, 도구 등 그 어떤 증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경찰은 내부자의 소행, 혹은 외부 조직의 개입 가능성을 동시에 조사했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당시는 이란 혁명수비대나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개입설도 조심스럽게 제기됐지만, 명확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5. 공소시효의 벽과 ‘완전 범죄’의 그림자
일본 경찰은 장기간 수사를 이어갔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에 빠졌다. 목격자도 없었고, 범행 동기를 입증할만한 직접적인 증거도 없었다. 결국 2006년, 공소시효가 종료되면서 이 사건은 형식적으로도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수많은 미스터리 전문가들과 언론은 여전히 이 사건을 추적하고 있지만, 정식 수사 재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일본 사회에서조차 보기 드문 완전범죄에 가까운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6. 이가라시의 죽음이 던진 묵직한 질문
이가라시 히토시의 죽음은 단지 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에서 희생된 지식인의 이야기다. 그가 번역했던 『악마의 시』는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검열과 탄압의 대상이 되며, 종교적 신념과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충돌할 수 있는지에 대한 뜨거운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루슈디 본인도 수십 년간 암살 위협 속에서 살아왔으며, 실제로 여러 차례 공격을 받은 바 있다.
7.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침묵의 위협’
이 사건은 우리가 지금도 직면하고 있는 자유의 한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이든 말하고 쓸 수 있는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언론인, 예술가, 작가들이 세계 곳곳에서 목숨을 걸고 진실을 전하려 애쓰고 있다. 이가라시의 죽음은 ‘침묵시키는 폭력’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은밀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례였다. 특히 번역자라는 자리는 본래 조명받기보다는 뒤에서 의미를 전달하는 존재이기에, 그의 희생은 더 깊은 의미로 남는다.
8. 이가라시 히토시, 기억해야 할 이름
그의 죽음이 벌써 수십 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아직 이 미스터리를 해결하지 못했고, 그의 희생을 온전히 되새기지도 못했다. 그가 남긴 것은 단지 번역서 한 권이 아니라, 지성과 진실에 대한 신념이었다. 우리는 이가라시 히토시라는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통해, 자유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숭고하면서도 위험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한다.
표현의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 위에 세워진 이 자유의 가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책임을 감당하고 있는가.
이 물음은 지금도 여전히, 날카로운 현실로 우리에게 되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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